1960년 소련에서 상상한 2017년의 미래
1960년대는 인류의 역사가 큰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다. 냉전의 긴장 상태 속에서 세계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가운데, 많은 예술가와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미래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소련은 과학기술의 선진국으로서, 자신들이 예상한 미래의 모습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내용을 담은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1967년에는 소련의 작가들이 그린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미래 도시'에 대한 비전이 주목받았다. 이들이 그린 2017년은 지금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당시 소련의 기대는 무인 비행기와 거대한 공중 도시, 그리고 로봇 노동자들이 일하는 새로운 사회를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소련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전의 대부분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것이 많았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상상력은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기술적 상상력은 항상 보는 이의 현재와 과거에 대한 반영이 되기 마련이다. 소련이 상상한 2017년의 미래에는 당대 사회가 직면했던 정치적 억압과 자원 배분의 불균형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고속 성장하는 시대에 대한 경각심과 현재의 불만이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1960년대 중반 소련 사회의 대중 문화는 이러한 고발적인 요소를 내포하며, 미래에서도 이러한 사회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남겼다.
미래를 그리는 그들의 상상이 단순한 기술적 진보에 그치지 않은 점도 흥미롭다. 그들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내다보았지만, 노동에 대한 정의는 당시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발전하면서 이들은 다시금 사회적 불안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만약 1960년대 소련 작가들이 현대의 AI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보았다면 어떤 비전을 제시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실제로 다수의 예시로 나타나고 있다. 2017년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와 스마트홈 기술,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과거의 예술작품 속에서 그려졌던 미래와 많은 부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모습은 김소연이라는 소설가가 쓴 '이반의 복수 2077'과 같은 공상과학 소설에서 묘사된 미래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인간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7년에는 정보 기술 산업의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그 혜택은 일부 기업의 손에 쥐어졌다. 이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문제는 오히려 악화되기도 했다. 소련의 미래 예측이 뼈아픈 현실로 나타난 점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통찰로 남는다.
결국, 1960년대 소련이 그린 2017년의 상상은 단순한 전망이나 유토피아적 묘사가 아닌,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로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상상의 시나리오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성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이다. 소련의 예시가 단지 과거의 역사적 맥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지속적인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이 이끄는 사회적 혁신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련의 비전이 현실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미래는 과거의 상상을 뛰어넘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한다. 인간이 주도하는 기술 발전,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한 좌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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