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내라는 사람이 찾아온"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강인하고 무뚝뚝한 모습이었다. 일하느라 바쁜 아버지의 얼굴에는 늘 깊은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주름은 사랑도 힘든 세상 속에서 일구어진 고민을 말해주곤 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도 병마에 뚫린 적이 있었고, 일흔이 넘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작은 아파트와 그의 존재에 대한 불완전한 기억뿐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후, 자신이 평생을 함께 해주었던 아버지의 부인이라는 여성, 즉 그가 평생 몰랐던 ‘계모’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인지도 모른 채, 그는 그녀의 존재를 인정해야 했다.

가까운 친척들조차도 그의 아버지에게 그런 아내가 있었는지는 몰랐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감춰진 비밀처럼 그들의 대화 속에서 흘러 지나갔다. 아버지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뒤에 묻혀진 의문으로 남아버렸다. 그는 괴로웠고,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와 이 여인은 언제 어떤 경로로 만났을까? 아버지는 과연 그녀를 어떻게 사랑했을까?

그녀는 그날 나타난 것 외에는 어떤 정황도 설명하지 않았다. 경직된 표정으로 “당신 아버지의 아내입니다”라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말쑥한 차림에 기품 있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가 아버지의 부인으로서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다. 사랑과 증오, 상처와 궁금증이 얽혀 그의 마음속에서 중첩되었다. 그녀는 그에게 아버지를 추억할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그 추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그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 보였으나, 모두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어떤 것 누리였는지 질문했지만, 그들은 그저 아버지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답변만 했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했던 사람들조차도 아버지가 만난 두 번째 아내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고 애매한 의견만을 내놓았다.

한편, 그가 처음으로 느낀 정체 모를 아버지의 부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내와의 삶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녀와의 관계에서 이혼 후의 삶은 어땠을까? 아버지의 사랑이란 무엇이었고, 그 사랑이 그의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을까? 사실 아버지는 청춘의 한때에 연애도 즐기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인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 속에서는 여러 여성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특정한 이유로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것일 수 있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눈에만 담겨 있었고, 세상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펼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흘러갔고, 아버지의 숨겨진 이야기는 그와는 다른 경로로 이어져갔던 것일 테다. 만약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도 있다면, 그는 그 여인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아버지가 가진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그 길의 끝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나간 아버지의 삶이 과거에 묻어버린 사랑의 얼룩인지도 모른다.

결국 아버지의 친구들이 그에게 남긴 것은 그저 “당신 아버지는 당신이 아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궁금해하는 아버지의 부인은 그렇게 그의 상상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는 여인이 단순히 아버지의 아내라는 정체성을 뛰어넘어 아버지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길 원했다.

한편, 과거의 삶을 되짚어보는 동안 그는 아버지의 부인과 직접 대화하고 관계의 윤곽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부인을 통해 아버지의 또 다른 측면을 보려 했고, 그녀에게 아버지의 어떤 부분이 특별했는지를 알아가고자 했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포함시키는 과정 같았다. 그는 아버지의 온전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부인에게 함께 차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서툴고 긴장된 대화 속에서 아버지의 부인은 과거의 추억을 엮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당신에게 자랑스러워했었다”는 말에 그는 마음속에 감춰진 감정의 폭풍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 사랑의 결실은 그가 평생 지속해온 성실한 모습,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버지가 단순히 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나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사랑은 그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의 이해와 수용이 더해지며, 아버지의 부인에 대한 시선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내이자 그가 처음 맞닥뜨린 인생의 복잡함 속에서, 그는 결국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야기를 이어 가며,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부인은 이제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그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갔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 복잡한 통찰을 남겼다. 사랑이란 단순히 사람과의 결합을 의미하지 않으며, 때로는 상실이 더 큰 만족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겨진 사랑의 이야기들은 세월 속에 흘러가며 아버지를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 여러 양상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 속의 다양한 경험들이 결국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성찰의 순간이었다.